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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장거리 연애

정래인 2018. 8. 25. 21:59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건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증이지만, 에드워드 엘릭의 오랜 습관이기도 했다. 수업을 들을 때나 밥을 먹을 때, 심지어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까지도 에드워드는 줄곧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올해로 3학년, 이제 성적에도 적당히 신경을 써야 졸업 전에 어떤 학점을 지울지 선택하기 편한 때. 과 수석을 도맡아 하는 에드워드와는 1학년 때부터 절친이자 이번 학기 룸메이트이기도 한 린 야오는 에드워드의 스마트폰 온리 라이프에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맨날 누구랑 그렇게 연락을 해?"


  린은 물었다. 학식이었고, 사람은 바글바글했다. 이 좁디좁은 학생 식당에서는 빨리 먹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거늘.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왼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열심히 입으로 밥을 나르던 에드워드는 눈만 흘끗 들어 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알아서 뭐하게. 너 좋아하는 밥이나 빨리 먹어."

  "궁금하잖아? 너 오늘 3교시에도 교수님한테 혼났잖아. 휴대폰 좀 그만 보라고."


  에드워드의 금빛 눈이 폭삭 찌그러졌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에드워드는 언짢은 듯 혀를 찼다. 


  "다들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니까."




[알에드] 장거리 연애

전력 주제 : SNS




  "사귀는 사람?"

  "그래."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뒤흔들었다. 캠퍼스 내에서도 보기 드문 긴 머리를 가진 두 남자가 꼬랑지를 늘어뜨린 채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시선을 끌 정도로 독특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린은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숨길만 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어떤 사람이야?"


  에드워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골몰했다. 그리고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린을 돌아보았다.


  "미남?

  "엉?"

  "잘생겼다고. 나만큼은 아니지만. 찬란한 외모에 머리도 좋고, 그야말로 엄친아. 최고."


  그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말할 일인가? 린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조용히 접어 마음속 서랍장 안에 집어넣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 감동 받은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습관적으로 폰을 들어 올린 에드워드의 곁으로 린은 바짝 다가가 붙었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어깨너머로 슬쩍 폰 화면을 훔쳐보았다.


  에드워드는 카X오톡을 켜고 있었다. 그래, 카카X톡. 린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카X에는 수십 개의 알림이 떠 있었다. 에드워드는 대화창을 클릭하고 빠르게 타자를 쳤다. 에드워드가 채팅에 몰두해 있는 사이, 린은 눈에 들어오는 대화를 빠르게 읽어보았다.


  [형, 밥 먹었어?]

  [먹는 중이야?]

  [오늘 학식은 뭐야?]

  [오늘도 린 야오라는 사람이랑 같이 밥 먹는 거야?]


  우와, 내 이름도 알고 있잖아. 린은 질린 표정으로 에드워드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았다. 에드워드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너는 밥 먹었어? 린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네 밥이나 잘 챙겨, 사랑해 따위의 답을 보내고 있었다. 욕실 쓴 다음엔 머리카락 정리 좀 하라며 매일같이 들볶는 악당 같은 룸메이트에게서는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염장질이었다. 욱. 린이 대놓고 속을 긁자 에드워드는 린을 째려보았다.


  "토할 거면 네 침대에다 하지?"

  "안 해, 안 해. 그보다 형이라면 연하야?"


  가늘게 뜬 눈으로 린을 노려보던 에드워드는 린의 질문에 시선을 피했다. 어, 어. 석연찮게 대답한 에드워드는 휴대폰을 갈무리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여, 연하라도 건실하니까 상관없잖아! 빨리 다음 수업이나 가자고!"




  에드워드는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신의 손을 비춰보았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운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금빛 반지의 안쪽에는 사랑하는 알폰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반지를 빼보지 않고도, 눈을 감고도 에드워드는 그 이름을 명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필통 옆에 내려놨던 휴대폰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공부하는 중?]


  알폰스였다. 에드워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검은 머리의 룸메이트가 실눈으로 관찰하건 말건 에드워드는 자신의 연애사에 열심히 집중했다. X카오톡을 켠 에드워드는 무적이었다. 두 개의 엄지가 액정 위에서 빠르게 춤을 추었다.


  [응, 알은? 저녁은 먹었어?]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난 먹었어. 오늘도 열심히 하네]


  이번에는 사진도 함께였다. 너른 책상 위에 올린 서너 개의 두툼한 전공책과 빽빽하게 필기된 노트. 환하게 켠 스탠드 불빛 아래 자신의 연인이 브이 자를 그리며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 귀여운 셀카를 보는 에드워드의 입가가 흐물흐물하게 풀렸다. 쪼옥! 액정에 찐하게 뽀뽀를 하자 옆 책상에 앉아 있는 룸메이트가 뒤로 넘어졌다. 콰당!


  [오늘도 귀엽네]

  [히히]


  에드워드가 사진을 저장하는 사이, 알폰스의 사진 위로 짧게 알림이 떴다.


  [형 사진도 보여줘]


  에드워드의 인상이 팍삭 찌그러졌다. 사진? 사진을 달라고? 에드워드는 고민했다. 이 귀엽고 깜찍한 동생놈은 언제나 에드워드의 셀카를 졸랐다. 셀카를 찍는 건 영 특기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나. 에드워드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의자에서 자빠진 채 사지를 떨고 있는 린을 돌아보았다.


  "야, 린. 셀카 찍는 법 좀 알려줘."




  [잠깐만 기다려]


  알폰스는 책상에 턱을 괸 채 헤실헤실 웃었다. 형이 셀카를! 형이! 드디어! 알폰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실제로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에드워드가 셀카를 찍어주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멋질까, 우리 형. 알폰스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후하후하 심호흡을 했다. 


  대학생끼리의 장거리 연애란 정말 못 할 짓이다. 하물며 같은 대학이라도 공부하기 버거워 헤어지곤 하는 마당에 기차로 3일 꼬박 걸리는 그 머나먼 거리를 직접 왔다 갔다 하기란 차라리 지옥에 가는 게 빨랐으며, 솜인형 에드워드를 연성해 안고 자는 편이 빨랐다. 매일같이 부쩍 성장하는 요즘 청소년이란. 알폰스는 하루하루 성숙해가는 형의 얼굴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항상 괴로워했다.


  3년. 에드워드가 센트럴 국립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에드워드와 알폰스의 3년에 걸친 장거리 연애는 화려하게 그 막을 열었다. 당시 에드워드와 함께 러쉬밸리 과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알폰스는 에드워드가 졸업과 동시에 센트럴로 거취를 옮긴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했다. 졸업하기까지는 1년이나 남았으며, 가난한 가계 형편 상 졸업 직전에 놓인 알폰스가 갑자기 센트럴 대학 부속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형과 같은 센트럴 국립대학교를 목표로 한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싱 국의 엘리트 코스 입문 단계로 유명한 크세르크세스 칼리지를 추천하는 담임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원서를 쓰고만 알폰스는 그 뛰어난 학업 성취도와 빛나는 외모 때문에 싱 국으로 수시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그 날 알폰스가 흘린 눈물의 깊이는 인체의 구성 성분에 포함된 물의 총량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알폰스는 탈수 증상으로 실려 갔다.


  장거리 연애로 속 끓이던 그 오랜 나날. 알폰스는 에드워드와 헤어지던 날 펑펑 울며 자신의 새로운 휴대폰 번호를 에드워드의 손에 쥐여주었다. 형, 나 잊으면 안 돼.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는 알폰스를 에드워드는 꼭 껴안고 찐하게 키스해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쓰렸다. 알폰스는 고개를 저어 과거의 잔재를 털어냈다. 텀이 좀 길긴 하지만 어떠랴, 기다려줄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보는 형의 얼굴이었다.


  지잉. 진동이 울림과 동시에 알폰스는 번개보다 빠르게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알폰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에드워드는 늘 그랬듯이 아름다웠다. 길게 늘어진 눈부신 금발을 하나로 단정히 묶은 채, 황금빛 샘처럼 일렁이는 아름다운 눈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둑한 밤에 켠 스탠드 불빛은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에 부딪혀 사금처럼 반짝이며 흩어졌다. 길게 빠진 나른한 눈매도, 살짝 미소 지은 사랑스러운 입술도 모두 알폰스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누구야."


  양손이 모두 나와 있었다. 이건 셀카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셀카인 척 에드워드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응시하며 찍은 사진에 불과했다. 알폰스의 주먹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책상 위에 깔아둔 유리가 박살이 났지만 알폰스의 금빛 눈에서 노기가 풀어지지는 않았다.


  [어때?]


  에드워드의 답장이 날아왔다. 알폰스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사랑스러워, 형]


  손가락으로는 달콤한 말을 남기며, 주먹으로는 유리를 부순 알폰스 엘릭.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손에는 코트를 집어 들고 방문을 나섰다. 기숙사 거실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동아리 친구 메이가 고개를 들었다.


  "알 님, 어디 가세요?"

  "메이, 나 잠깐 센트럴에 다녀올게."

  "네에?"


  메이의 까만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알폰스는 대답을 듣지 않고 곧장 성큼성큼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울상이 된 메이가 양팔을 파닥이더니 후다닥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큰일이에요! 큰일이에요, 야오 가의 린!"


  수화기를 귀에 대고 필사적으로 외치는 메이의 비명을 뒤로 한 채, 알폰스 엘릭은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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