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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 엔터테인먼트의 대형 신인 알폰스 엘릭의 소문은 데뷔가 결정되기 전부터 제법 화려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은거 중인 슈퍼 아이돌 에드워드 엘릭의 친동생이라는 공식적인 정보도 있었지만, 그를 본 사람이라면 고향 리젬블의 노인들부터 고등학교 동창인 배우 메이 창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려한 외모를 두고 갖은 찬사를 늘어놓았다. 신이 직접 인간의 형상으로 아메스트리스에 강림했다는 터무니없는 과장을 믿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황금을 녹여 가늘게 뽑아낸 듯한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뚜렷한 이목구비, 조각으로 빚은 듯한 넓은 어깨와 탄탄한 몸매라는 의견은 항상 일치했다


  호기심 가득한 파파라치나 극성팬들은 항상 FA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합숙소로 숨어들었지만, 그들은 알폰스를 찾아내기도 전에 맨발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사실 그때까지 알폰스 엘릭은 그저 데뷔를 기다리는 수많은 연습생 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이따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에드워드를 주제로 한 가십거리가 쏟아져 나올 때면 한 마디 스치듯 언급될 뿐인 그런 미미한 존재였다. 


  그러나 알폰스 엘릭의 데뷔가 결정되던 날, 그의 앨범 티저는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수도 센트럴을 강타했다. 비록 30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티저 속 5초도 안 되는 보컬 파트였지만, 그 찰나의 순간 전율이 이는 가창력으로 알폰스는 단숨에 세계를 사로잡았다. 그의 화려한 외모와 청량한 미성에 언론마저 주목하기 시작했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인기였고, 앨범 홍보 차원에서 흔히 출연하곤 하는 예능 프로그램마저 쿨하게 뛰어넘은 신인이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아직 브라운관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신인의 데뷔 무대와 초판 한정 앨범이 전량 매진된 그 획기적인 사건은 가요계에 길이 전설로 남았다.


  모두가 기다리던 데뷔 무대는 정말이지 성공적이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등장한 알폰스의 모습을 본 모든 사람이 그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포스터 따위는 그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려한 마스크와 꿈을 꾸는 듯 빛나는 눈동자. 알폰스의 시선이 닿는 자리마다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는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청률은 폭주했다. 탁 트인 하늘처럼 청명하고 아름다운 미성과 폭발적인 가창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그 아이돌은 아티스트라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었고, 그가 데뷔한 음악 프로그램은 그 날 최대 시청률을 달성했다. 


  



  "윈리, 에어컨 좀 꺼 줘."


  알폰스는 미간을 짚으며 등받이에 기댔다. 하아, 노골적으로 지친 한숨이 밴 안으로 짙게 흩어졌다. 윈리는 에어컨을 끄고 시동을 걸며 백미러로 자신의 아이돌이자 23년 지기 소꿉친구를 걱정스럽게 응시했다. 올해로 2년 차, 데뷔하기도 전부터 쏟아지는 러브콜과 어마어마한 인기로 질식하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반짝이며 톱스타의 자리를 당당히 거머쥔 오랜 친구는 최근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사실 데뷔 초부터 지쳐 보이긴 했지만, 요즘은 더욱 그랬다. 스케줄을 너무 많이 잡은 걸까. 윈리는 기어를 넣고 페달을 밟으며 미안한 듯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피곤하지, 알. 금방 데려다줄게."


  미안, 윈리. 사실 그런 게 아니야. 알폰스는 느릿하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가 지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알, 에드는 잘 지내?"


  무거운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윈리는 애써 밝게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오랜 소꿉친구이자 알폰스 엘릭의 형, 에드워드 엘릭의 근황을 윈리는 언제나 궁금해했다. 알폰스와 함께 살고 있으니 잘 알겠지, 형 바라기니까 얘기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윈리는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에 내심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형?"


  알폰스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재차 에드워드의 근황을 물어보려던 윈리는 알폰스의 표정을 보더니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말했다간 내일 생길지도 모르는 모든 트러블은 전부 자기가 떠맡게 될 것이다. 2년간 알폰스를 도맡아 관리했던 매니저로서의 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알폰스 또한 입을 다물었다. 넓디넓은 밴 에는 깊은 침묵만이 있었다.




  알폰스를 내려준 윈리는 내일 있을 스케줄만 간략히 읊어준 후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잡힐세라 빠르게 멀어져가는 밴의 뒤꽁무니를 멍하니 응시하던 알폰스는 짧은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터덜터덜 걸어 경비실을 지나치는 알폰스의 손목을 누가 덥썩 잡았다. 알폰스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응시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싱긋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여어, 슈퍼스타."

  "안녕하세요, 하보크 씨."


  쟝 하보크는 알폰스 엘릭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비 총 책임자였다. 연애 문제에 관해서는 영 한심한 남자였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확실했다. 알폰스의 파파라치를 몇 번이나 잡아준 것도 쟝이었다. 알폰스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영업용 미소를 띄웠다. 지쳤어도 지친 티를 내면 안 되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아이돌이었으니까. 쟝은 경비실 안으로 발을 들이더니, 한참 후 커다란 상자 너덧 개를 안아 들고 나왔다.


  "여기 택배가 왔다. 오늘도 여전하구나." 

  "또?"


  맙소사. 알폰스는 아찔함에 눈을 감았다 떴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흘리는 알폰스의 팔을 쟝은 장난스레 상자 끝으로 툭툭 쳤다. 알폰스는 팔을 뻗어 상자를 받아 안았다. 하나하나가 아주 묵직했다.


  "너무 많이 시키면 화낸다?"


  하보크의 커다란 손이 알폰스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쏟아질 뻔한 상자를 추슬러 안으며 알폰스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주의할게요."





  어두운 복도를 알폰스는 양팔 가득 커다란 박스를 끌어안고 휘청거리며 나아갔다. 알폰스를 괴롭히는 것은 수없이 많았지만 앞으로 마주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폰스는 벽에 상자를 밀어붙이고 겨우겨우 현관 도어록을 해제했다. 대문을 열자마자 눈부시게 쏟아지는 형광등 불빛 하며 집 안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알폰스는 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이 있구나. 알폰스는 현관에 택배 박스를 내려놓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따스해진 마음이 순식간에 팍삭 식는 현장을 목격했다. 오밀조밀 섬세한 손가락 사이에 응원봉을 세 개씩, 총 여섯 개나 끼고 커다란 벽걸이 TV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휘두르는 왕년의 슈퍼 아이돌, 에드워드 엘릭이 거기에 있었다. 화려한 금발이 찰랑거리도록 응원하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쿨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사랑해, 알!"


  브라운관 속에서 춤을 추는 알폰스를 향해 격렬히 외치는 에드워드에게서 현실의 알폰스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흩어진 포토 카드는 종류별로 열두 개씩 갖춰져 있었고 자체 제작 슬로건과 팬클럽 손수건까지 펼쳐져 있었다. 소파 옆에는 막 뜯은 듯한 택배 박스 수십 개가 산처럼 쌓여 있다.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형, 나 왔어."

  "조용히 좀 해 봐, 알. 노랫소리가 안 들리잖아."


  알폰스는 충격을 받았다. 쓰러지고 싶은 기분을 겨우 갈무리하며 알폰스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진 않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아이돌 데뷔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첫 무대가 끝났을 때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찐한 키스와 뜨거운 밤을 선사해주었다. 그날만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알폰스를 봐주지는 않을망정 TV 녹화본만 주구장창 돌려보며 TV 속 알폰스만 예뻐하게 된 것이다.


  울면서 항의도 해 봤고 앨범도 뺏어봤다. 모두 허사였다. 에드워드가 알폰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가 지금 빠져 있는 건 아이돌인 알폰스였다. 진정한 의미로 덕질을 하고 있는 에드워드에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오빠"가 최고였다. 물론 오빠 본인이 와도 덕질을 말릴 수는 없다.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자 덕후의 진리. 끓어오르는 덕심은 결코 탈덕하라는 말 한마디와 등가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알폰스는 참담함을 몸소 느끼 벽에 붙은 자신의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데뷔 1주년 기념행사에서만 배포된 한정 포스터로 이제는 돈 주고도 구하기도 어렵다는 S급 희귀 상품이었지만 알폰스에게는 그저 자신의 얼굴일 뿐이었고, 사랑하는 형을 빼앗아 간 원수 덩어리에 불과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잘난 얼굴이 너무 얄미웠다.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데, 얼마나 치였는데......참았던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알폰스는 엉엉 울며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문 살살 닫아!"


  에드워드의 잔소리가 뒤따랐다. 아아악. 알폰스는 너무 억울했다. 내가 잘생기고 싶어서 잘생긴 것도 아닌데. 사실 형을 유혹하기 위해 미래의 자신이 부디 잘생겼으면 좋겠다 내심 바라긴 했지만, 너무 잘생긴 것도 문제였다. 둘도 없을 소중한 연인이자 하나뿐인 형 에드워드 엘릭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있음에, 그래서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음에 알폰스 엘릭은 마음 깊이 절망했다. 


  인기가 많으면 뭐 해, 부와 명예를 얻으면 뭐 해! 애인이 자신을 방치하는데! 이건 너무해. 조금만 더 못생겼어야 했는데. 알폰스 엘릭은 침대로 쓰러져 흐느꼈다. 베개가 축축이 젖어들 때까지도 에드워드는 알폰스를 찾지 않았다. 퉁퉁 부어오른 눈과 훌쩍거리는 코를 휴지로 팽팽 풀어낸 알폰스는 힘없이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속눈썹에 다시금 습기가 차올라, 알폰스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오늘도 슬픔에 가득 찬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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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님(@Joaillhera)과 연성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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