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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Kiss on the beach

정래인 2018. 8. 11. 23:45




[알에드] Kiss on the beach




  "야, 알! 빨리 안 오고 뭐 해! 버리고 간다!"

  "기다려, 형!"


  체력이 남아도나, 뭐 저렇게 기운이 쌩쌩해. 알폰스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훑어내며 빠른 걸음으로 에드워드를 뒤따랐다.


  장장 12시간에 걸친 기나긴 비행. 머리를 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냅다 퍼질러 자는 제 형과는 달리 너무나도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 알폰스 엘릭은 전혀 쉬지 못했다. 길고 긴 여행길에 지쳐 어딘가에서 칭얼대는 아이와 이따금 진상을 부리는 아저씨 한두 명. 뒷좌석의 연인들이 몰래 속삭이며 신혼의 단꿈을 꾸는 동안 알폰스는 저 혼자 단잠에 푹 빠진 형을 구경하다 선잠 한두 번 든 게 고작이었다. 착륙 후에야 상쾌한 얼굴로 깨어나 비행기에서 내릴 채비를 하는 에드워드의 곁에서 알폰스는 배기다 못해 욕창이 날 것 같은 저린 엉덩이를 툭툭 두들겼다. 


  해변까지 15분 거리인 숙소를 잡은 것까진 좋았다. 그래, 다 좋은데 숙소에서 나와 바닷가를 향해 가는 그 15분이 끔찍할 정도로 길었다. 남국의 거리는 너무 무덥고, 찌는 듯이 숨이 막혔다. 알폰스는 흥건하게 젖어 들기 시작한 이마를 재차 훔쳐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휴양지라더니 다 거짓말 아냐?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정작 숙소를 올 때까지 차창 밖으로 에드워드와 함께 수많은 감탄사를 늘어놓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숙소에서 좀 쉬었다 움직이면 좋을 텐데.


  알폰스는 굳이 따지자면 추위에 더 약했지만 그렇다고 더위에 강한 편도 아니었다. 당장 어디 시원한 그늘로 기어들어 가 기나긴 여정에 지친 몸을 누이고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부터 보러 가자는 에드워드의 요청을 알폰스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눈앞에서 살랑살랑 춤추는 눈부신 금발을 원망스레 노려보지만, 이따금 자신을 돌아보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치밀었던 짜증이 사르르 눈 녹듯 녹아버렸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밀려듦과 동시에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내려, 알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랑하는 에드워드의 뒷모습과 점점 다가오는 바다의 풍경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이윽고 피로마저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 알폰스의 눈에 가득 차올랐다. 눈 앞에 펼쳐지는 끝없는 하늘과 투명한 바다가 장관이었다. 등 뒤에는 야자수, 저 멀리에 알바트로스. 곁에는 히비스커스 목걸이를 단 형.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질질 끌리는 삼선슬리퍼를 신고 선글라스를 낀 에드워드가 함께다. 알폰스와 마찬가지로 드넓은 바다를 응시하던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왜?"


  살짝 추어올린 선글라스 아래에 드러난 기다란 눈꼬리가 좋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 척 자신을 살피는 목소리가 좋았다. 알폰스는 생긋 웃으며 에드워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냥, 형이랑 있으니까 좋아서."

  "간지럽기는."


  에드워드는 어깨 위로 늘어진 금발을 뒤로 찰랑 쳐내며 알폰스에게 보란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왕 바다에 왔는데, 수영이라도 한번 할까?"


  금빛 눈동자 두 쌍이 서로 마주쳤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스타올을 모래사장에 내던진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 크게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른 물방울이 비처럼 시원하게 두 사람을 덮쳤다. 이윽고 밀려드는 파도에 몸이 제멋대로 휩쓸리는 경쾌한 감각에 형제는 마음껏 몸을 맡겼다. 야호!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사지에 감겨드는 물의 흐름이 갑갑하던 모든 기분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알폰스 또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에드를 따라 소리를 질렀다.


  "형, 우리 비치볼 안 들고 나왔어!"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에드워드의 팔이 알폰스를 껴안았다. 참방대는 물장구에 조리가 벗겨지는 것 같았지만 알폰스는 신경쓰지 않고 에드워드를 마주 끌어안았다. 차가운 물 속에서 따뜻하게 감겨오는 체온이 너무도 달콤했다. 알폰스의 손이 허리춤 아래로 슬슬 내려가자, 에드워드는 있는 힘껏 알폰스를 밀쳐냈다. 그리고 양손 가득 바닷물을 떠내더니 아주 신이 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받아라!"


  그리고 바닷물이 알폰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집어 던지는 형국이다. 알폰스는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물방울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이 같은 그의 행동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잠시, 끊이지 않는 물줄기에 경악했다. 이게 진짜 사람 손으로 퍼 나르는 거라고? 알폰스는 팔을 들어 조금 더 단단한 가드를 올렸지만, 그의 잔인한 연인은 겨우 그 정도로 멈출 남자가 아니기에, 계속해서 폭우 같은 물세례를 퍼부었다.


  "형, 잠깐만, 눈에 바닷물 들어갔...."

  "잠깐 같은 게 어딨냐? 받아라!"


  그 정도로 멈추지 않을 남자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인정사정없을 줄은 몰랐다. 알폰스는 따가운 눈을 연신 깜박이며 눈앞에 흐릿하게 번진 금빛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잡힐 듯 잡힐 듯 손아귀를 빠져나가 바닷물을 부어대는 연인의 행동에 알폰스는 점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아, 진짜!"


  알폰스는 크게 팔을 휘둘렀고, 온기를 틀어쥐었다. 그와 동시에 조리를 잃어버린 발이 모랫길에 미끄러졌고, 크게 물보라가 일었다. 발아래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뽀그르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방울. 기분 좋을 정도로 상쾌한 온도. 바다를 그대로 투영하듯 눈부시게 반짝이는 뒤집어진 하늘.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긴 사랑스러운 에드워드 엘릭.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는 알폰스도 에드워드도 호흡곤란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세계가 주는 선물인 산소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죽음의 어귀를 엿보고 쿵쾅대는 심장을 열심히 진정시켰다. 세상은 푸르고, 행복은 여기에.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꼭 끌어안았다. 양팔에 벅차도록 가득 찬 에드워드를 사랑했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는 에드워드의 볼을 어루만지며, 알폰스는 말했다.


  "형, 나 지금 깨달았어."

  "뭘?"


  알폰스의 금빛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나더니 이윽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은 얼마나 달콤한가.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이는 금발을 빛내며 사랑스럽게 볼을 붉힌 알폰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태양을 빚어 만든 듯 그림 같은 남자. 에드워드는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는 연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에드워드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볼에 감싸 대며, 알폰스는 속삭였다.


  "사랑해, 형.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새삼스럽게 자신에게 반했음을 고하는 연인을 바라보며, 에드워드의 볼 또한 붉게 물들었다. 어흠! 헛기침하며 에드워드는 주먹으로 알폰스의 가슴을 툭 내리쳤다.


  "짜식이, 부끄럽게."


  그리고 알폰스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싸 끌어당겼다. 손끝에 느껴지는 젖은 머리카락의 까슬한 감촉이 짜릿했다. 허리께에서 물결치는 파도 또한 제법 에로틱한 뉘앙스로 다가왔다. 유혹으로 완연히 물든, 허스키한 음성으로 에드워드 또한 알폰스에게 고백했다. 금빛 눈동자를 깊은 애정으로 빛내며.


  "나도 사랑해, 알."


  에드워드의 팔이 알폰스의 목을, 알폰스의 팔이 에드워드의 허리를 껴안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세상은 바닷빛으로 온통 반짝이고, 마주한 입술에서는 바다 맛이 났다. 짙게, 뜨겁게. 서로를 갈구하듯 강하게 끌어안으며 두 사람은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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