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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Home Alone

정래인 2018. 8. 11. 22:04



  형, 나는 형이 날 보호해주길 바라지 않아.





[알에드] Home Alone

알에드 전력 주제 : 보호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늘에 잔뜩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는 한 줄기 햇빛조차 들지 않았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침묵이 깊이 가라앉은 방에는 딱 적절했다. 때가 껴 희뿌연 창문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꽉 닫혀 있었다. 마치 군에게 쫓기고, 알 수 없는 집에 숨어든, 형제가 처한 상황을 쏙 빼닮은 극적인 장치와도 같았다.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창문 밖을 응시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이전보다 더 길게 드리운 금빛 머리카락 때문에 좀처럼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집을 불태우고 떠난 그 날의 결의를 닮은 붉은 코트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이리 뛰고 저리 구르느라 지저분해진 옷차림이 그를 더 왜소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알폰스의 곁에 앉지도, 다가와서 대화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알폰스가 현자의 돌이 되고부터는 줄곧 그랬다.


  "고마워, 형. 그렇지만..."


  침묵을 가르고 어렵사리 꺼낸 말을 에드워드는 단칼에 잘라냈다.


  "알, 너는 연금술을 쓰지 마."


  왜 그렇게 형은 염려하는 걸까. 나는 현자의 돌이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문을 봤다는 사실도 기억해냈고, 지금이라면 형처럼 연성진 없이 연성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생각만큼이나 많은 말을 한 번에 토해내며, 알폰스는 두 손바닥을 마주 가까이 대어보았다. 곧장 에드워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 써도 돼!"


  알폰스는 화들짝 놀라 양손을 멀리했다. 에드워드 또한 놀란 눈으로 알폰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본인도 충격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치밀어오르는 조급함과 짜증을 쏟아낸 것에 죄책감을 느낀 것일까. 에드워드는 미안한 듯, 어쩌면 슬픈 듯도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알폰스는 물끄러미 피로에 지친 에드워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금술을 썼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천천히 연구해서 널 원래대로 되돌려줄 테니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맺은 에드워드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돌렸다.


  "모든 건 그다음이야."


  에드워드는 등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알폰스는 황급히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형, 어디 가?"


  에드워드는 멈춰 섰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로 늘어진 땋은 금발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꾸만 눈에 밟혔다. 마치 한참은 보지 못할 것처럼.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이라도 될 것처럼. 잡아야 할 거 같은데. 형을 멈춰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초조하기 그지없는 알폰스에게 에드워드의 말은 덤덤히 날아들었다.


  "그 자식이 말했잖아, 호문클루스를 조종하는 녀석이 있다고."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그놈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것이 있어."


  그래서 더 위화감이 들었다.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알폰스는 못내 불안했다. 그래서 알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갈래."


  불안했다.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때는 꼭 무슨 일이 터지거나,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뿐이다. 홀로 전부 떠안고 가기 위해서. 에드워드는 기본적으로 알폰스에게만은 다정했지만, 결국은 형이었다. 알폰스에게 절대 기대지 않았다. 함께 나눠 들면 좋을 텐데. 그 무거운 짐을 함께 든다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에드워드가 뒤돌았다. 그 얼굴에 알폰스는 말문이 막혔다. 에드워드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넌 됐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그 여상스럽고도 가벼운 말투가 알폰스를 멈춰 세웠다. 


  "형..."

  "혼자 집 잘 볼 수 있지?"


  그 말을 끝으로 에드워드는 방을 나섰다. 알폰스는 다시금 천천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집 잘 보라는 말, 금방 돌아온단 뜻이겠지. 그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자꾸만 마음이 술렁였다. 불안했다. 알폰스는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서로뿐인데 에드워드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지은 죄인 것처럼 굴었다. 몸을 잃고 영혼이 정착되었을 뿐인 갑옷이 된 것도, 현자의 돌이 된 것도 전부 에드워드 혼자만의 죄가 아닌데. 에드워드도 알폰스 자신 때문에 팔을 하나 잃지 않았던가.


  역시 같이 가야겠어. 알폰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에드워드를 따라 문을 나섰다. 그러나 허사였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에 가버린 에드워드가 알은 걱정스러웠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조금 더 빨리 나올 걸, 조금만 더 서두를걸. 


  그때 시야에 들어온 건 전화기였다. 동시에 떠오른 건 어느 전화번호였다. 쇼 터커, 그가 리젬블로 걸어온 전화를 알폰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니. 니나를 그렇게 만든 남자가. 대체 어째서. 알폰스는 수화기를 들었다.





  갑옷을 때리는 빗줄기는 차가운 소리만을 반복해서 내었다. 터덩, 텅.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은 갑옷에서 울리는 공허한 소리가 알폰스의 가슴을 차갑게 얼렸다. 아, 지금은 가슴이 없구나. 그럼 마음일까? 알폰스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없는 동안에라면 다녀올 수 있겠지. 그 남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들을 생각이다. 알폰스는 장갑을 꼭 움켜쥐었다. 마찬가지로 공허하게 구겨지는 소리가 손바닥 안에서 울렸다.


  형. 나는 형이 나를 보호해주길 바라지 않아. 함께 하고 싶어. 형과 같이 생각을 나누고, 같이 행동하고 싶어. 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아픔을 홀로 껴안고 있는지 나는 알고 싶어. 연금술을 쓰지 못해도 괜찮아. 형과 닿을 수 없어도 괜찮아. 그저 곁에만 있게 해준다면, 함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아직도 내리는 빗줄기는 갑옷을 얼리고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몸으로는 몇 시간을 서 있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에드워드가, 형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알폰스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창고에 분명히 쇼 터커가 있다.


  현자의 돌을 쓰는 방법을 알아내야지. 그래서, 형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만 있다면.


  알폰스는 주먹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집을 보는 건, 형을 기다리는 건 그다음 일이야.





-

그리고 현자의 돌이 줄어드는 대참사를 몸소 익히는 알폰스 엘릭...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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