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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하이에드] Das Licht

정래인 2014. 5. 17. 00:26

*알에드 기반


  "형은 아름다워."


  여름의 돌풍이 작은 창문에 매달려 있던 커튼을 크게 뒤흔들었다. 바람이 방 안을 부드러이 휘감아 돌고, 커튼 그림자는 마룻바닥에 드리운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크게 일렁였다.

  '아름답다'의 주체가 되는 소년Edward은 뜨끈뜨끈 잘 익은 달걀부침을 막 입으로 가져가려던 참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기세 좋게 떠올렸던 달걀이 반쯤 기울어진 숟가락으로부터 추락해 접시 위로 산산이 으깨졌다. 자태면 자태, 때깔이면 때깔. 소담하니 곱던 달걀이 메주처럼 뭉개졌음에 응당 들 법도 한 안타까운 심정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에드는 차마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거대한 갑옷Alphonse을 빤히 쳐다보았다. 듣는 입장, 지학(志學) 15세의 건강한 소년에게야 충분히 못 들을 소리였으므로. 

  한편 알은 에드의 접시 위에서 처참하게 명운을 달리한 달걀부침을 자못 안타깝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슬퍼하지 않는 형 대신 애도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하나뿐인 형제가 꽤 시답잖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적잖이 당황했다. 그제야 알은 조금 전 자신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함을 깨닫곤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물론 여자가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답단 게 아니야!"


  형은 일단 남자니까! 철컥철컥 변명을 하듯 크게 흔들리는 갑옷의 손바닥을 보며 에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그 '일단'은 뭘 의미하는 걸까."


  오토메일이 철컥철컥,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싶더니 쥐고 있던 숟가락을 진흙 뭉개듯 가벼웁게 으스러뜨렸다. 삐뽀삐뽀, 2차 피해 발생.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굉~장히 기분 나쁜데 말야.”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를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로 날 세우고 살벌하게 웃어 보이자, 커다란 갑옷이 크게 흠칫하더니 덩치에 맞잖게 덜덜 떨며 몸을 사린다. 아니, 형, 그게……점점 기어드는 목소리를 향해 반 장난 반 진심으로 야! 하고 크게 윽박질렀더니 뜻밖에도 잔뜩 겁먹고 있었던지 커다랗게 튀어 오르며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화낼 거면 내 이야길 듣고 난 다음에 화를 내, 형!”


  알의 손이 에드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텅 빈 갑옷과 오토메일이 부딪히며 철컹, 기묘한 소리를 울렸다. 에드의 입가를 간질이던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가셨다. 이 소리는 어떻게 해서도, 어떤 농담으로도 웃어넘길 수 없는 소리였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에드를 앞에 두고서, 알은 나직하게 말했다. 


  “어째서 형만 괴로워하는지 모르겠어. 인체연성은 우리가 함께 저지른 죄야.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 형이 팔을 잃은 것도 나 때문이야. 하지만 형은 혼자 자책해. 예전에 그랬지, 형을 원망하고 있느냐고. 형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괴롭혀. 니나의 일도, 제 5연구소의 일도…그래, 형은 전부 홀로 떠안으려고 했어.”


  그래서 형의 고통을 나눠 안고 싶었어. 언제나 혼자만 다 짊어지려 했으니까. 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 그 자신은 느낄 수 없겠지만. 어깨에 파고드는 손가락을 느끼며 에드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긴 다른 이야기야. 알이 속삭였다. 에드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방금 말했지만, 형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어. 그 때문에 형 나름대로 세운 모든 규칙을 허물어뜨리고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아니야. 형은 여전히 눈부셔. 형이 천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형은 빛이야. 그 어떤 절망적인 곳에 굴러떨어진다고 해도, 반드시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을 줘.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적인 이상, 난 그걸 형에게서 봐.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보아온 것, 만난 사람들. 심지어 호문쿨루스들이 형을 이용하려 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치였을 거야. 가능성. 부딪히고 깨져 상처받아도, 놀랄 만큼 올곧은 형에게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능성을 읽어, 나처럼. 영원히 빛나는 이상을. 그래서 사방에서 형의 빛을 보고 몰려들게 되는 거야."


  추한 것들도 함께 말야. 알은 고개를 숙였다.


  "형은 이런……이런 세계에 있어선 안 돼. 더 높은 곳에서 눈부시게 살아야 할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런 더러운 세계에 굴러 들어가는 것이 내 숙명이다."


  에드가 알의 말을 끊었다. 더 들을 가치도 없는 내용이었다. 에드는 탁자 위에 올려둔 찻잔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장을 태우는 듯 머물렀다.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접시 위에 내려앉았다. 한참 흔들리던 붉은 찻물은 점점 가라앉으며 익숙한 금빛 잔상을 흩띄웠다. 그것을 에드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는 아름다운 빛이 나의 것이라면, 그건 세상을 밝히기 위한 등불이 아니야. 더러운 밤나방들을 불러 모으는 가로등이다."


  에드는 웃었다. 평소의 호기로운 웃음도, 비틀린 웃음도 아니었다. 그 덤덤한 미소를 알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표정을 보일 수 없는 철 투구는 덜덜 떨리며 감정을 철없이 흘리고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듣고 있던 에드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래선 자멸하는 방법밖에 없어."

  "안 돼!"


  갑옷이 달려들어 에드를 와락 끌어안았다. 방금까지도 알이 앉아있던 나무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옷의 가슴팍에 세게 박힌 머리가 윙윙 울렸다. 혹이라도 났나 싶을 만큼 지끈거리는 이마를 살필 겨를도 없이, 거대한 힘이 등과 허리를 짓눌렀다. 있는 힘껏 끌어안긴 듯 숨이 막혔다. 얼굴이 갑옷에 짓눌린 채, 에드는 크게 발버둥 쳤다.


  "어이, 알! 아파! 아프다고, 놔!"

  "안 돼, 형, 안 돼…사라지지 마."


  절박한 음성이 심장을 강하게 때렸다. 숨 쉬는 것도 잊어 멈춘 호흡 앞에, 거대한 갑옷은 아이처럼 떨며 에드의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이였다. 열네 살, 아직 어리디어린 소년이었다.


  “사라지지 마…….”


  재차 속삭이는 목소리는 슬픔이 깊게 배어 있었다. 형마저도 떠나지 마. 목소리는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다. 에드마저 사라진 알은 알일 수 없었다. 텅 빈 갑옷에 그려 넣은 아주 작은 혈인 하나. 그런 그를 알폰스 엘릭이라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엘릭이었다. 그들 형제에게는 서로가 전부였다. 그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알폰스 엘릭Alphonse Elric에게, 에드워드 엘릭Edward Elric은 존재 이유였다.

  손에서 힘이 주룩 빠져나갔다. 아직도 쥐고 있었던가, 잔뜩 구겨진 숟가락이 힘없이 바닥 위로 추락했다. 챙그랑, 숟가락이 마루와 부딪히는 소리가 절절했다. 멍하니 천장 저편을 쳐다보던 에드는 눈을 감았다. 저항을 멈춘 몸이 천천히 마룻바닥으로 내려섰다. 끌어안고 있던 힘이 조금 빠져나간 것이다. 그래도 등을 감싼 손에 들어간 힘은 여전했다.

  에드의 팔이 천천히 알의 허리를 감쌌다. 부딪힘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오른팔과 차가운 갑옷을 느낄 수 있는 왼팔. 잃어버린 온기는 죄의 증거.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 에드는 가만히 눈을 떴다. 껴안은 몸체는 그야말로 거대해, 팔 쭉 벌려도 등까지 감싸 안기에는 무리였다. 에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사라지지 않아.”

  “……정말이지?”


  확인을 구하듯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음성.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린 미소가 문득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 그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며 그 속삭임에 확신을 더한다. 물론. 약속해. 약속할게. 계속 내 곁에 있어 줘, 형. 아아. 에드의 대답을 들으며 알은 그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에드는 알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차가운 금속이 뺨을 얼릴 듯 시리게 닿아왔다.

  이 순간에조차, 죄책감은 심장을 씹어 삼킨다.



  "─ㅇ……드──…에드워드 씨!"


  물속에서 억지로 끌어내진 듯 붕 뜨는 기묘한 감각. 거꾸로 뒤집히는 느낌과 동시에 에드워드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 에드워드를 보며 놀라기는 깨운 사람Alfons 또한 마찬가지였다. 걷어차인 듯 저 멀리 건너편 벽까지 밀려난 이불이 그의 몸부림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축축한 땀이 손바닥에 흥건히 묻어났다. 결코 추억이 될 수는 없는 기억. 꿈의 형태로 나타났어도 웃어넘길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허리 아래까지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꿈에서보다 조금 더 바랜 금빛. 그 끝자락을 희고 섬세한 손가락이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어깨를 끌어안고 다독이는 느낌이 좋았다. 에드워드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댔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분명 뿌리칠 줄 알았는데. 의외의 행동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알폰스는 에드워드의 머리에 가볍게 키스했다. 꿈속에 살며 꿈을 꾸는 소년은 열렬한 숭배자와도 같은 자신의 동거인이 무슨 귀찮은 짓을 하는지에 대해선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브레이크를 걸어 둘 정신적 여유조차 지금은 없어 보였다. 에드워드는 눈을 감은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알의 꿈을 꿨어. 동생인 알의 꿈을."


  끝없이 달콤하게 내리던 키스의 비가 순간 멎었다.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아직도 꿈에 젖은 듯 느릿했다.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줄 걸 그랬나 봐."


  남겨두고 온 알폰스Alphonse를 매일 생각하는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알폰스Alfons에게 친절하게 대해 줄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늘 그래 왔던지라 새삼 우울할 것도 없다.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알폰스는 에드워드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자, 일어나요. 아침 먹을 시간도 벌써 한참은 지났어요."

  "시끄럽네, 알고 있어."


  키스한 후에는 모든 게 리셋 되는 것처럼, 꿈을 꾸던 소년은 평소의 에드워드 엘릭이 되어 인상을 쓰고 목청을 높인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비칠비칠 방을 빠져나가는 에드를 보며 알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 사람도 참 제멋대로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지만, 키스마저도 리셋된 것처럼 구는 작은 폭군에게 대항할 힘은 없었다. 평소처럼 활개를 치는 그에게 키스 같은 걸 했다간, 정말 집어던져 질 지도 몰라.


  “와, 맛있는 냄새. 오늘 아침 메뉴는?”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명백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듣고 있자면 저절로 한숨이 난다. 알폰스는 저만치 구겨져 잊힌 이불을 정돈해 침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드워드 씨, 냄비 건드리지 마세요!”



  잘 익은 감자 빛을 띤 나무숟가락이 카르토펠살라트Kartoffelsalat를 넘치도록 가득 펐다. 안정권에 들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지는 감자 덩어리를 잠시 지켜보다 잽싸게 한입 가득 욱여넣고 우물거리는 에드워드를 보며, 알폰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알폰스 하이드리히 표, 전매특허 스마일이다.


  "뺏어 먹지 않아요. 많이 만들어 뒀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아아."


  저만큼 건성인 대답도 또 있을까. 알폰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라이베쿠헨Reibekuchen을 천천히 입에 밀어 넣었다. 냉장고가 텅텅 빈 탓에 순 감자뿐인 식단이라 불평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그는 불평이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열심히 잘 먹어줄 따름이다.

  1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뜻밖에도 그는 편식하지 않았다. 소식하다 못해 챙겨 먹지도 않을 것처럼 생겨놓고선 남들의 3배 이상은 먹어치우는 대식가라는 점이 약간 의외였을까. 일에 치여 늦잠을 자거나 공부에 열중해 끼니를 거를 때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음식이 있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잘 먹었다. 우유만 빼고. 우유만큼은 싫다며 어린아이처럼 저만치 밀어내는 모습을 보며 괴로운 호흡기로도 크게 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알폰스의 푸른 눈동자가 에드를 슬쩍 살폈다. 검은 빵조각을 크게 뜯어 우물거리는 그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다. 기왕에 먹는 거 굴라쉬Gulasch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아쉬운 마음이다. 그는 스튜를 좋아하니까.


  한편, 모든 집세와 가사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집안의 요리사이자 동거인(이 정도면 동거인이라기보다는 준·하인이다) 알폰스 하이드리히Alfons Heiderich를 에드워드 엘릭Edward Elric은 앞머리 너머로 슬쩍 훔쳐보았다. 단정한 미소. 역시 단정한 외모. 플래티넘 블론드가 고개를 숙일 적마다 부드럽게 쓸려 흘렀다. 목덜미를 가볍게 덮는 얇은 머리카락 하며 다정한 푸른 눈동자가 말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끌었다. 간간이 눈이 마주치면 부드럽게 휘는 그 곡선이 무엇을 닮았는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알았다. 

  무척이나 그리운.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수많은 구축식과 법칙, 구성 물질과 재료를. 수많은 지식과 이론을 머리에 직접 집어처넣는 듯했던, 문 안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을 더듬어 그 감각을 끌어낸다. 진리, 완벽한 이론.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검게 가라앉았다.

  문 안쪽과 건너편의 바탕이 되는 인물은 동일하다. 단테에 의해 이 세계로 혼만 떠밀려 왔을 때, 자신의 혼은 <이 세계의 에드워드>의 몸에 이끌려 들어갔다. 바탕이 동일한 인물에게로. 육체는 혼을 부른다. 그렇다면 건너편의 혼을 이쪽으로 불러온다면 혼이 끌려 육체로 들어갈 것이다. 이론은 완벽했다. 전혀 관계없는 타인의 육체에 혼을 심는 것보다는 분명 훨씬 안정할 것이다. 물론, 갑옷에 비해서도.


  "에드워드 씨는 아름다워요."


  익숙한 목소리가 상념을 비집고 꿈속의 문장을 속삭였다. 에드워드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알폰스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고 있다. 기억은 순식간에 유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아, 언젠가의 너도 이런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에드워드는 우두커니 앉아 알폰스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마치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인식한 알폰스는 자신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함을 깨닫곤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물론 여자가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답단 게 아니에요!"


  알폰스의 변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대체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머리에서부터 핏기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찬물을 끼얹는 것도 분명 이보다는 낫겠지.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꾹 쥐고 에드워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이 호흡을 뒤흔들었다. 

  '눈앞에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걸 시험해본 거야.'

  끔찍한 기억이 반복된다. 애써 묻어두었던 불쾌한 기억이 두꺼운 장막을 들춘다. 속이 울렁거린다. 소름이 돋는다. 구역질이 났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려다 만들어낸 호문쿨루스. 다른 사람의 몸에 혼을 옮기려는 생각. 아버지의 과오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운명.

  에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울컥 치솟는 감정조차도 더럽게 느껴졌다. 자기 자신이 이토록 소름 끼치게 여겨진 적이 있었던가.

  ‘금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선 닿을 수 없었어.’

  니나, 나도 결국 네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었던 걸까.

  아아.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은 세모난 양심이 되어 심장을 찢어발긴다. 알, 알폰스. 나는 아름답지 않아. 인간을 희생해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동생을 위한다는 핑계와 이기심에 기대어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희생하고자 하는 추악한 인간이다. 혈관에 흐르는 피의 탓일까. 그렇다면 이 몸의 피를 전부 뽑아내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알이 아름답다고 속삭여주지 않았더라면 이 머리카락도 진즉 뜯어내 버렸을 것이다.


  확실히 아침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으면 어느 예쁜 아가씨 같기도 하지만요. 말을 꺼내놓고 생각해보니 농담치고는 정말 죽도록 맞을 것 같은 발언이다. 이런. 알폰스는 날아올 주먹에 대비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습관처럼 날리던 스푼은커녕 개미 한 마리 비행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알폰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에드워드는 울고 있었다. 늘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던, 금세공 단추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는 멍하니 풀린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알폰스는 당혹스러움에 입을 가렸다. 실언이라도 한 걸까.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명백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알폰스는 벌떡 일어나 에드워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알폰스가 움직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에드워드는 그저 망연히 앉아만 있었다.


  "…기분 상했어요? 미안해요, 난 그저……"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채 끝내지 못한 문장을 억지로 삼키고 말끝을 흐리며, 알폰스는 손을 들어 에드워드의 뺨을 감쌌다. 넋을 놓은 그의 얼굴이 이쪽을 향하도록 조심스레 돌리고, 알폰스는 천천히 에드워드의 눈물을 닦아내었다. 눈물에 젖어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걷어냈을 때, 에드워드가 갑작스럽게 알폰스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에드워드 씨!?”


  문자 그대로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깜짝 놀랐다. 사레마저 들릴 뻔했다. 기겁하리만치 깜짝 놀라 에드의 팔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에드는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매달리다시피 알폰스를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그 필사적인 몸짓에 알폰스는 저항을 멈추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미안해, 미안해,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사과를 줄곧 반복했다. 알폰스의 섬세한 손이 당황한 듯 헤매다 이윽고 천천히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달래는 듯 다정스런 그 감각을 느끼며, 에드워드는 꾸역꾸역 터져 나오는 오열을 삼켰다. 악문 잇새에서는 흐느낌조차 새어나오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그는 하염없이 동생을 그리워한다.

  알. 알폰스. 네가 빛이라고 말한 나는 이런 사람이다. 끌어안은 이 온기조차도 망설임 없이 부수어낼 수 있는, 형편없고, 추잡한.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이런 나를 너는 여전히 사랑해줄까.



  따사로운 햇살은 마룻바닥에 부서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가에선 커튼이 조용히 일렁였다. 끌어안고 선 갑옷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온기가 번지지 않는 양철, 어깨를 끌어안은 텅 빈 손. 그래도 그 안에 동생은 분명히 있었다. 결코 이 손으로는 끌어안을 수 없는 가여운 동생이. 갑옷에 비친 금빛 잔상을 두 눈에 새기며, 에드는 속삭였다.

  반드시 네 몸을 되찾을 거야.

  언제나처럼 나누던 그 언약을 가슴 속에 재차 되새긴다. 심장이 떨리는 몫만큼, 자신만이 기억하는 그 미소의 찬란함만큼. 허리춤에 매달린 은시계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졌다.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해도, 나는 네 곁에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빛Licht이라 해도.


-

Das Licht 빛

Kartoffelsalat 독일식 감자 샐러드

Reibekuchen 감자전

Gulasch 헝가리식 쇠고기 스튜


역시 마이너스로 치닫는 구강철! 글이 왜 자꾸 중2때로 회귀하는 건지 모르겠다 에드 이 나쁜 새끼 이쁜 새끼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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