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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하이에드] 무제

정래인 2014. 3. 19. 21:35

 "에드워드 씨."


 알폰스 하이드리히Alfons Heiderich는 제법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16세, 지난여름부터 쑥쑥 자라기 시작한 팔다리가 욱신거리는 시기. 간질간질, 이따금은 오싹해지는 관절은 봄꽃처럼 간지럽다. 흐드러지게 핀 꽃잎이 커튼을 들치고 마루에까지 떨어져 내린다. 그래, 꽃이 문제가 아니지.


 "에드워드 씨!"

 "─으음……시끄러워, 알…."


 제 눈앞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이 남자가 문제인 것이다. 알폰스의 덜 자란 얼굴이 장난기 반, 복잡함 반 절묘히 섞여 일그러졌다. 난 당신의 동생이 아니라구요. 알폰스는 있는 힘껏 이불뭉치의 모서리를 쥐고 하나, 둘, 셋! 세며 힘차게 잡아당겼다.


 "일어나세요, 에드워드 씨! 해가 중천이라구요!"

 "아, 정말!"


 이불이 하늘로 솟구쳤다. 화들짝 놀란 알폰스가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이불 속에서 긴 금발을 풀어헤친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지만 금세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아침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남자의 몸은 기이했다. 누군가 도끼로 깔끔하게 내려친 것처럼 텅 빈 왼팔, 그리고 오른다리. 솟구친 이불에 제대로 맞아 사레가 들린 듯 시뻘게진 얼굴로 기침을 해대는 알폰스에게, 잔뜩 가라앉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천둥처럼 내리꽂혔다.


 "아아, 진짜! 쉬─는─날─이─잖─아─!!"


 적반하장인가. 알폰스는 먹먹해진 귀를 꾹꾹 누르며, 인상을 잘게 찌푸렸다.


 "오늘 외출을 하자고 한 건 에드워드 씨였잖아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앙? 내가 언─"


 기세 좋게 따지려 들던 남자의 날카로운 눈매가 순간 흠칫하더니, 이내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스윽 돌려버린다. 그거 아주 나쁜 버릇인 건 아시나요? 알폰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방구석에 놓인 커다란 나무상자 옆으로 다가갔다. 그로테스크하리만치 와글바글 모아둔 다리 모형 중 하나를 집어들며, 알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런 사람인걸.


 "알았으면 나가죠. 오늘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


 어느새 가짜 팔을 낀 남자는 대꾸 없이 알폰스에게서 모형 다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제 텅 빈 다리 아래에 그것을 채웠다. 알폰스는 고요한 눈빛으로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만난 지 올해로 1년, 맨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얼굴을 알폰스는 아직도 잊지 않는다.


 쾰른 성당의 앞, 당황스런 얼굴로 제 옷깃을 잡으며 절박하게 이름을 물어오던 남자. 물어본 주제에 답을 듣기는커녕 먼저 도망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그 날, 정말로 다시 만났다. 오베르트Oberth 선생님의 연구실, 그 좁은 창가에 가만히 쏟아지던 햇빛. 용광로에 금을 녹인 듯,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반짝이던 금발. 장인이 평생 몰두하여 깎은 금 세공품처럼 아름다운 눈동자. 무신경해 보이던 그 눈동자가 자신과 마주치는 순간─손을 내밀며 알폰스 하이드리히입니다,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의미 모를 절박한 감정을 격렬히 뿜어내던 그 순간을, 알폰스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뭐해, 가자."

 

 어느샌가 외투까지 모두 갖춰 입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 알폰스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안다. 알, 이따금 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그 이름이 자신Alfons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알폰스, 그렇게 부르는 발음이 Alfons가 아닌 Alphonse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마 그 자신은 알지 못하리라.


 뮌헨의 1922년이 아닌 아메스트리스의 1916년을 살아가고 있는 에드워드 엘릭Edward Elric, 자칭 국가 연금술사 씨.



_


쾰른 성당 이야기를 했는데, 옛날에 일본 뉴타입에 실린 샴발라 예고를 보고 쓴 글. 굉장히 아련한 표정으로 하이드리히를 보는 에드, 그리고 가운데에 커다랗게 박힌 <네 이름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러하다..하이드리히 표정은 ㅇㅅㅇ...??? 딱 이 표정임.

아 모르겠다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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