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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Wandering Child

정래인 2018. 8. 5. 18:34




[알에드] Wandering Child



전력 주제 : 그이 셔츠






  문 저편의 세계로 건너온 지도 어언 2년. 에드과 알의, 두 사람의 아침은 늘 그랬듯이 분주하다.


  "알, 머리끈 좀 갖다 줘!"

  "응, 형."

  "알, 셔츠!"

  "응."

  "알!"

  "알았어, 정말!"


   그리고 에드워드는 늘 그렇듯이 알폰스를 부려먹는 데에 여념이 없다. 기다란 금발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채, 오토메일에 진 얼룩을 닦으면서. 요리하랴, 옷 갈아입으랴, 가엾게도 에드가 요청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챙기느라 바쁜 알폰스 엘릭은 몸이 백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형은 어리광쟁이야. 나이가 들어도 변하는 게 없다니까. 에드에게 셔츠를 건네주며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기뻐서 히죽거리는 입가를 손끝으로 눌러 내릴 때였다.


  "알, 너 키 컸어?"


  에드워드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물었다. 알은 셔츠 단추를 채우던 손길 그대로 에드를 돌아보았다. 에드는 어제 새로 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름대로 딱 맞는 걸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에드는 어쩐지 성이 난 얼굴로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이거 네 셔츠잖아? 나는 이렇게 긴 걸 사지 않았다고, 최근 몇 년간 키가 전혀 크지 않...았으니까!"

  "아, 정말이야? 미안, 형. 같이 걸어뒀더니 헷갈렸나 봐."


  에드는 알의 사과를 듣더니 걷었던 소매를 다시 내리고는 양옆으로 팔을 확 펼쳤다. 마치 어떤 특정한 갈색 코트를 입고 앞섶을 벌려보이는 것 같은 당당한 행동에 알은 무심코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에드의 셔츠는 단추가 잘 잠겨 있었다. 휴, 손을 내린다.


  "이걸 좀 보라고, 정말 말도 안 돼!"


  에드는 그대로 뻗은 양팔을 알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 어떻다고, 얼떨떨하게 에드의 팔을 내려다보던 알의 눈동자가 점점 동그래졌다. 내밀어진 손등을 반절이나 덮고 있는 소맷자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은 길게 늘어진 셔츠 밑단, 그리고 아직 바지를 입지 않아 훤히 드러난 탄탄한 다리. 맨발과 오토메일.


  "어느 틈에 이렇게 커다래진 거야, 젠장! 아직 눈높이는 비슷하니까 괜찮을 거 같지만, 으음, 그래도 동생이 이렇게 커버렸다는 것에 형으로서는 물론 감격하고 있지만....음, 그래도 건방져, 알 주제에!"


  지금도 알과 에드는 눈높이가 비슷했고, 새로 셔츠를 사긴 했지만 에드보다 컸다는 자각이 알에게는 없었다. 그렇구나, 나 키가 좀 컸구나. 새로이 깨닫는 순간, 새삼스럽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그의 손등을 반 뼘은 덮고 있는 소매를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부터 간질거렸다. 에드가 자신의 셔츠를 입고 있다. 알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뭐어? 그런 게 어디 있어, 형! 나 열 살이었을 때도 나보다 형이 더 작았는걸! 기억 안 나?"

  "흥! 나이도 한참은 어리면서, 키 조금 컸다고 벌써 형을 그렇게 홀대하는 거냐? 앙?"


  똑같은 걸 먹고 있는데 나는 왜 벌써 키가 멈춰버린 거야. 에드는 불만에 가득 차 투덜거렸다. 조금 눈높이가 높아진 정도로 저렇게 좋아하는 동생을 보니 착잡한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부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에드는 불평을 내뱉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엷게 미소지으며 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트리샤를 닮아 약간은 달콤한 초콜릿색을 띠는 짙은 금발. 그 얼굴에 투영되는 누군가의 단정한 미소를 무의식중에 떠올리며, 에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알폰스Alfons 정도로는 커지려나."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상이 알의 심장을 후려쳤다. 알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어쩐지 숨쉬기가 버거웠다. 그런 알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는 손가락으로 알의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두피를 간지럽히는 따스한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알은 멍한 눈으로 에드를 응시했다. 에드는 웃고 있었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알을 바라보며 에드는 손을 내밀었다.


  "무슨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알."


  절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어떻게 다잡을 수가 없었다. 알은 무너지듯 에드에게 기대며 그 작은 몸을 와락 껴안았다. 에드의 팔 또한 알을 마주 끌어안았다. 선뜩할 정도로 차갑게 휘감기는 오토메일의 감촉과 뜨겁게 목을 감싸는 손바닥의 온기. 이마와 눈가를 스치듯 꾹 눌러오는 입술 감촉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물론이지, 형."


  알은 힘겹게 속삭였다. 그의 형은 정말이지 잔인해서, 이따금 그Alfons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동생이 상처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건 형의 죄책감일까. 알은 생각한다. 걱정하지 마, 형. 에드의 등을 감싸 안으며 알은 속삭였다. 에드의 숨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나는 절대 형을 두고 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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