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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붉은 외투

정래인 2014. 4. 8. 21:02

* 샴발라 이후 날조.


 "형. 이거 한 번 입어 볼래?"


 알이 내민 것을 에드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에 익을 대로 익은 붉은 코트였다. 3년을 보지 못한, 3년을 입었던. 에드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코트 끝에 닿지도 못하고 움츠린 손가락 끝을 다시 천천히 뻗었다. 알은 가만히 코트를 들고 서 있었다. 에드는 고개를 들었다. 알은 건네준 것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 익은 서스펜드를 착용하고서, 알은 생소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에드는 살짝 벌리고 있던 입술을 다물었다. 알의 커다란 눈동자 속에 그렁그렁 맺힌 감정은 곧 쏟아질 듯 가득했다.


 "안 맞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새 건네받아 손에 쥐고 있다. 코트의 부피치고는 제법 두께감이 있다 싶더라니, 코트 안에 검은 제복도 함께 들어 있었다. 에드는 피식 웃었다. 이게 지금 나한테 맞을 것 같다고 주는 거냐? 알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한테 조금 크게 지었으니까, 지금의 형에겐 딱 맞을 거야. 형이 옷을 들고 저쪽 세계로 가버렸으니까.


 "하지만 코트는 형 거야."


 알은 말했다. 에드는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옷가지를 내려두고, 에드는 한참을 코트를 내려다보았다. 알의 표정이 각막에 착 달라붙은 듯 떨어질 줄을 몰랐다. 생소함은 7년의 반증. 10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7년 만에 부쩍 자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드는 눈을 감았다. 심장에 착 달라붙은 죄책감은 이 순간, 먼지처럼.

 에드는 눈을 떴다. 그리고 제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알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떨렸다. 아아. 소리가 되지 못한 신음이 매끄럽지 못한 한숨이 되어 입술을 적셨다. 서스펜드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졸렬하다. 끔찍했다. 알은 서스펜드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벌려진 손가락 틈새로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은, 그 사람을 똑 닮았다.


 형, 나는.


 문이 벌컥 열렸다. 알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시간은 멈추었다.


 "……표정이 이상하잖아, 알."


 피처럼 붉은빛. 걸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듯했던 코트. 끝자락에 수도 없이 입을 맞춘 나날. 그 끝자락을 끌어당기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선 에드워드 엘릭.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운 연인이었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한다. 땋아 늘인 머리는 이제 허리춤을 넘긴다. 어색하지 않게 딱 들어맞는 제복. 장갑. 소매 끝이 조금은 짧은 코트.


 에드는 거울 위에 손을 대었다. 거울에 빗긴 세월은 순식간에 7년을 뛰어넘는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알폰스, 그리고 윈리.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나날을 셀 수 없을 만큼 보냈던 시간. 이별. 스승님. 빼앗긴 다리. 대가로 지불한 팔과 텅 빈 갑옷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오토메일. 현자의 돌. 알폰스, 하이드리히.


 에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는 것은 희생한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만을 위하여. 손바닥 위에 흘려낸 피는 모두 자신의 몫이었다.


 문고리에 가져간 손은 잠깐의 황홀한 설움, 그리고 망설임 없이 세계를 비틀어 연다.


 "……표정이 이상하잖아, 알."


 혹여 울고 있을지도 모를,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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