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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신의 도시 #4

정래인 2018. 9. 2. 12:04




  신은 백일이라는 길고 긴 시간에 걸쳐 그 거룩한 손으로 세계를 구성하였다. 방대한 시간의 씨실과 공간의 날실은 정교하게 짜여 세계라는 이름의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 신은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세계를 '황금 사자의 도시'라 이름 붙였다. 이윽고 어머니 신, 땅에서 솟아난 최초의 인간은 '사자의 아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은 세계를 보며 만족하였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 둘을 내려 어머니 신과 함께 지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지배권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넘겨준 어머니 신은 자신의 거처인 깊고 깊은 땅속에서 잠을 청하였다.


  신의 아들들은 지상을 다스렸다. 금으로 빚어진 그들은 강인하였으며, 늙지 않았다. 아직 어리고 부족한 아우를 형은 잘 보살피며 인간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정교하게 짜인 세계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신이 완벽하기에 시작된 비극이었다. 굶주리지 않는 신의 자손과는 달리, 인간은 바닥을 기며 자비를 호소하였다. 자손이 태어나고 번성하며, 그들은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악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신에게 방치된 세계를 저주한 인간은 신의 두 아들 중 약하고 어린 아우를 붙잡았다. 그리고 전신을 147개의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었다.


  갈가리 찢긴 신의 아들은 황금 사자의 도시 전역에 뿌려졌다. 한 조각은 땅에서 굴러 싹을 틔웠고, 다른 조각은 바다의 물고기가 되어 불어났으며, 또 다른 조각은 허공에 날개 치는 새가 되었다. 어머니 신의 품으로 돌아간 아우의 영혼은 저승 깊은 곳까지 내려가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풍족해진 세계를 바라보며 인간은 그것이야말로 신의 아들이 내린 은총이라 하였다.


  홀로 남은 형은 슬퍼하였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아우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고뇌한 끝에 결국 지하로 향하였다. 형은 아우를 저승에서 건져내었다. 147개의 조각을 잃은 아우에게 형은 새로운 육체를 부여하였다.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신의 아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 발로 저승으로 걸어 들어간 형은 한쪽 발에 죽음의 인을 받았다. 지배자를 잃은 땅은 어머니 신에게 사실을 고하였고, 어머니 신은 깊이 상심하여 인간을 돌보려 하지 않았다. 죽음은 빈자리에 슬며시 자신의 검은 발을 들여놓았다. 죽음은 인간의 영혼을 원하였고, 그리하여 신을 배신한 인류는 반드시 죽음에 안기게 되었다.


  신의 자손이면서 죽음의 인이 새겨진 자신이 인간을 다스리는 건 합당치 못하다 여긴 형은 자신의 지배권을 아우에게 넘겨주고 신과 인간을 잇는 자가 되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아우는 인간을 다스리는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이게 다예요?"

  "다는 아니지."


  알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만년필을 휘휘 돌렸다. 펜촉 끝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에드워드는 질색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황금 벽돌로 쌓아 올린 화려한 신전 바닥에 검은 물방울무늬가 점점이 자리 잡았다.


  에드워드 전용 노예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알폰스는 여전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노예란 모름지기 육체노동을 동반하며 주인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미덕이거늘, 에드워드는 그런 것을 알폰스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노예라기보다는 사육당하는 펫처럼,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으며 신전 한쪽 구석에 앉아 노닥거리는 게 전부였다. 길고 긴 항해에 지쳐 있던 알폰스의 볼에는 일주일 사이에 뽀얗게 살이 차올랐다.


  "그래서 그 죽임 당한 신의 이름이 뭔데요?"

  "신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니까."


  알폰스는 조금 전에 들은 신화를 되새기며 펜촉 끝으로 수첩을 톡톡 두들겼다. 짜임새는 여느 신화 속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를 만든 신과 땅을 다스리는 어머니 신. 죽임당한 구원자와 부활. 엄연히 세계를 구성하는 두 신의 자손이건만 신이 아니라 그 아들이라 한다. 세계를 만든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부재중인 창조신의 행방이 알폰스는 신경 쓰였다. 에드워드는 알폰스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이름 하나를 툭 내뱉었다.


  "알폰스."


  알폰스는 고개를 들었다.


  "네?"


  에드워드는 인상을 팍삭 찡그리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너 말고 내 동생. 일단 한 번은 죽었었어." 


  알폰스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리곤 자세를 고쳐 잡고 펜을 바투 쥐며 에드워드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걷잡을 수 없는 흥미가 푸른 눈동자에서 활활 타올랐다. 반쯤 의자에서 일어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신화라면서요?" 

  "맞아."

  "그런데 그렇게 젊은데 신화 속에 등장할 수 있나요?"

  "젊다고?"


  에드워드의 손이 알폰스의 어깨를 밀쳤다. 앗,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알폰스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수첩과 만년필이 무릎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떠밀려 혼란스러움을 느낀 알폰스는 항의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에드워드의 손이 알폰스가 늘어진 의자의 양 팔걸이를 짚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듯 흘러내리고, 닫혀버린 세계 속에서 뚜렷하게 일렁이는 깊고 어두운 금빛을 알폰스는 당황한 채 마주했다. 소름이 끼칠 만큼 단정한 음성으로 에드워드는 속삭였다.


  "우리는 늙지 않아." 


  비밀을 말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에드워드는 말했다. 붉은 입술이 매혹적으로 비틀렸다.


  "물론 죽지도 않지."  


  점점 입술이 가까워졌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알폰스의 약한 심장을 거세게 두들겼다. 뜨거운 숨결이 아랫입술을 적셨다.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걸 느끼며 알폰스는 윽, 작게 신음했다. 눈앞이 점점 흐려지며 일렁였다. 알폰스는 작게 헐떡였다. 


  "형, 뭐 하는 거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그를 구해준 건 다른 알폰스였다. 강인한 팔뚝에 허리를 휘감겨 손쉽게 덜렁 들어 올려진 에드워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알폰스는 한숨 돌리며 의자 등받이에 늘어지듯 기댔다. 눈물이 찔끔 났다. 알폰스는 황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놔, 알."

  "형의 말대로예요. 일단 한 번은 죽었으니까."


  마치 어제도 저녁밥을 먹었다는 듯 여상스러운 말투였다. 알폰스는 머뭇거리며 눈을 들어 올렸다. 자신을 한심스럽다는 듯 쏘아보는 금빛 눈동자를 마주하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허벅지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진 수첩과 만년필을 다시 손에 쥔 채, 알폰스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옥에 다녀왔다는 신은............"

  "신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건 형이에요."


  딸랑, 에드워드의 발목에서 방울 소리가 울렸다. 길게 늘어진 붉은 실이 시선을 끌었다. 알폰스의 금빛 눈동자가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날 살리려다 그렇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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