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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렌

[알에드] 백야

정래인 2018. 9. 1. 22:00



  "같이 가, 형!"


  등 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겹도록 듣는 그 말을 에드워드는 단 한 번도 싫어한 적이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할딱이며 에드워드는 짧은 팔을 휘둘렀다. 조금만 힘을 줘도 저만큼 날아갈 것 같은 자그마한 몸이 금세 휙 반 바퀴를 돌았다. 바짝 뒤따르는 알폰스는 역시나 울상을 짓고 있었다. 트리샤를 닮아 동그란 눈을 보며 에드워드는 활짝 웃었다.


  "집까지 누가 더 빨리 가나 경주야!"




[알에드] 백야白夜

전력 주제 : 경쟁




  에드워드는 눈을 떴다. 새하얀 천장이 에드워드를 가만히 마주하고 있었다. 뻑뻑하게 마른 두 눈을 억지로 감았다가 뜨며 에드워드는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을 했다. 금세 얼얼해진 턱을 매만지며 에드워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삐꺽. 오토메일 무게를 버텨보려 애쓰던 싸구려 스프링이 비명을 질렀다. 시트에서 손을 뗀 에드워드는 허리를 폈다. 여관방은 금세 정적을 되찾았다.


  에드워드는 손바닥을 펴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는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오래된,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의 파편이 꿈의 형상으로 떠오를 때면 에드워드는 깊은 밤에도 눈을 뜨곤 했다. 창가를 파르라니 적신 달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워드는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커다란 갑옷이 닿았다. 홀로 팽개쳐진 차가운 갑옷을 향해 에드워드는 몸을 움직였다. 마룻바닥을 얼린 냉기가 매일매일 잔뜩 걷느라 퉁퉁 부은 발바닥에 섬뜩하게 스며들었다. 에드워드는 발가락을 오므렸다. 막 깨어나 뜨거운 숨결이 뽀얗게 피어올랐다. 덮고 있던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린 에드워드는 다시 발바닥을 마루로 내렸다. 차박, 딱. 차박, 딱. 느릿느릿 걸어간 에드워드는 갑옷 앞에서 멈췄다. 알폰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자, 공허한 소리가 들려왔다. 


  "형."

  "............잠이 안 와서."


  깊은 밤이었다. 새벽빛이 오려면 아직은 한참 멀었다.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처음 팔과 다리를 잃었을 때처럼. 아직도 몸이 작은 어린아이인 것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양철 갑옷의 품에 파고든 에드워드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추위로 벌벌 떨리는 몸과는 달리 마음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기억나, 알?"


  에드워드는 입을 열었다. 알폰스에게만은 언제나 상냥한 목소리가 도란도란 여관방 안에 울렸다.

 

  "옛날에 달리기 경주 많이 했었잖아."

  "응."

  "달리기는 늘 내가 이겼지."


  공기가 작게 떨렸다. 이것을 웃음소리라고 말해도 좋을까. 양철 속에서 울리는 단순한 진동에 불과했지만, 에드워드는 그것이 웃음소리임을 안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울림은 사람의 성대에서 나오는 음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기묘한 소리는 개개인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목소리'라는 정보를 담고 있지는 못했다. 어쩌면 동생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그 가설을 쉽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과거를 함께 되짚곤 하는 습관 덕분이겠지.


  "지금은 내가 이길걸."

  "내기할래?"


  에드워드는 고개를 들었다. 투구가 에드워드를 향해 있었다. 알폰스는 그 안에 있다. 혈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알폰스는 대화할 때면 꼬박꼬박 에드워드를 향해주었다.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에드워드는 갑옷의 팔에 이마를 기댔다. 금빛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에드워드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비록 몸을 잃었지만, 동생은 여기에 있었다.


  "그럼 해가 뜨면 달리기하러 나가자."

  "내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주기야."


  가죽 장갑이 에드워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알폰스의 말에서 들끓는 열의를 느낀 에드워드는 작게 웃었다. 무슨 요구를 하려고? 에드워드가 묻자 알폰스는 비밀, 이라고 대답하더니 마주 웃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함께면 좋겠다."


  알폰스가 말했다.


  "그럼 형도 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


  어깨를 감싼 그 반대편 장갑이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간지러울 정도로 상냥한 손길을 에드워드는 가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쓰다듬어도 갑옷에는 감각이라는 게 없다.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는 느낌은 알폰스에게 없을 것이다. 그저 에드워드를 위해서. 깊은 밤에 깨어나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위로하기 위해서 알폰스는 갑옷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네."


  에드워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알폰스를 꼭 껴안았다. 따스해지지 않는 양철 갑옷의 곁으로 에드워드는 조금 더 달라붙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계속 함께야."

  "응."


  알폰스는 항상 대답을 잘했다. 새삼스러운 사실을 되새기며 에드워드는 크게 하품을 했다. 뻑뻑한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다시금 못다 한 잠을 청하기 시작했. 내일은 달리기를 하자. 누가 더 빠른지 내기하는 거야. 졸음에 겨워 점점 멍하게 풀어지는 머릿속으로 에드워드는 느릿느릿 생각했다.


  "잘 자, 형."


  기분 좋게 이마를 스치는 가죽 장갑 감촉을 마지막으로, 에드워드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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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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