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츠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이츠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리더와 막내의 의견다툼으로 소란스러운 나날을 절찬리에 보내는 중이었다. 시건방진 막내는 반역 이후로도 사사건건 대들고, 리더는 리더대로 미숙한 막내를 성장시킨다는 명목 하에 놀리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게 하루이틀이면 괜찮은데, 매일매일이었다. 나도 외로운 줄 안다고, 더 이상은 못 참아. 세나의 눈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날카로워졌을 때, 레오와 츠카사는 이마를 맞댈 정도로 달라붙어 입씨름 중이었다. 더욱 배알이 꼬였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세나는 조금의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을 비난했다. 있는 힘껏, 열과 성을 다해, 격정적으로.
"왕님이랑 카사 군, 애정행각도 정도껏 하라고. 완~전 짜증나!"
세나 이즈미의 발언은 스튜디오 내에서 빈둥거리던 약 두 사람의 멘탈에 직격타로 꽂혔고, 레오와 츠카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입술.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츠카사였고, 입을 가린 건 레오였다. 이, 인스피레이션! 레오는 그렇게만 외치더니 황급히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갔다.
"세나 선배!"
"아 왜, 카사 군. 그렇게 째려볼 거면 조용히 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두 사람을 당황에 빠뜨려놓고, 세나 이즈미는 유유자적하게 악보를 들여다보았다. 계속해서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손 하며 마찬가지로 사정없이 떨리는 눈동자를 누군가 알아챘다면 당황하는 사람이 약 세 사람 있음을 깨달았을 텐데, 슬프게도 남은 두 사람은 타인의 사정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인종들이었다. 그 증거로 아라시는 화장을 고치고 있었으며, 리츠는 숙면 중이었다. 아, 말 좀 가려서 할 걸. 말해놓고도 수습이 안 되는 이 분위기를 어찌하면 좋을까. 전전긍긍하던 이즈미는 악보 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씨근덕거리는 막내의 숨소리는 그야말로 뒷전이었다.
아, 나도 이제 모르겠다. 이즈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헉. 힉. 레오는 양 볼을 감쌌다. 유메노사키 학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정원을 지나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낮잠용 나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꼴도 보기 싫은(이라고 말해주면 이거 상처 받는 걸~하고 영원히 상처 따윈 모를 얼굴로 헤실헤실 웃는) 황제가 저만치에서 보고 있든 말든 츠키나가 레오는 청춘의 고뇌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호르륵. 차 마시는 소리가 거슬렸다.
무엇이든 의식하고 나면 어색해지는 법이다. 숨 쉬는 법부터 움직이는 법까지. 게슈탈트 붕괴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걷는 법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손발이 같은 방향으로 나가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랴. 아악. 악. 레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굴렀다. 내일은 죽어도 스튜디오에 나가지 않으리. 근데 안 가면 세나가 날 괴롭힐 거야. 스오~가 실망할 거야. 으으. 섬세한 원석과도 같은 예쁜 눈동자가 걱정으로 담뿍 물들었다.
새빨개진 얼굴이 귀여운 걸, 츠키나가 군.
죽어, 황제.
레오는 다시 나무 뿌리에 몸을 누인 채 모 벌레처럼 뒤집어졌다. 으아악. 악. 아악. 낯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모른 채 몸부림을 치고 있노라니 인스피레이션이 솟아올랐다. 레오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새빨개진 얼굴로, 떨리는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 얄밉기 그지 없어, 레오는 손에 잡히는 아무 나뭇가지나 붙들었다. 그리고 절벽에 매달리는 처참한 심정으로 바닥에 오선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제목은 말 안 듣지만 나름대로 귀엽다고 말하지 않으면 삐질 것 같아서 귀찮지만 역시 귀여운 스오의 노래.
한편 츠카사는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절규하고 있었다. Stupid, 세나 선배는 stupid 그 자체입니다. 아악. 으악. 무미건조한 비명을 질러대는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앞머리에 가려진 우아한 보랏빛 눈동자는 그야말로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좋아한다니. 좋아한다니! 츠카사는 잽싸게 귀를 틀어막았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내용일 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법. 레오를 좋아한다는 걸 들켜버린 걸까. Leader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 안에는 츠카사의 불안감도, 기대도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을 게 틀림없다.
경애하는 츠키나가 레오의 자유분방함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것은 단연코 스오우 츠카사일 것이다. 세나 이즈미는 이미 학을 뗀 지 오래였고, 사쿠마 리츠나 나루카미 아라시는 앞서 말했듯 남의 사정에 일부러 발을 끼워넣어 고개를 들이밀 정도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도 않았다. 할 말이 많은 만큼 느끼는 감정도, 보내는 시선도 많은 법. 아슴아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츠카사는 빠져버리고 말았다.
첫사랑이다. 그저 그런 시시한 연애소설처럼 치부하기엔 당장 자기 일이었다. 츠카사에게 최초로 찾아든 이 사랑을 그저 헛된 것으로 흘려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첫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처럼, 츠카사에게는 첫사랑을 품은 상대와 유일한, 마지막 사랑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레오와 영원히 함께. 그런 걸 이루기 위해서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필요했는데 세나 선배가 다 망쳐놓을 줄이야. 츠카사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첫사랑은 풋풋하고 미숙해서, 그저 남에게 들켜버렸다는 걱정 하나만으로도 심각하게 동요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잔뜩 비벼댄 섬세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다. 구태여 바로 잡을 생각이 없었다. 머리카락도, 마음도, 흐트러지는 것은 흐트러지는 대로 두면 될 일이다.